전기 배선이 소리 품질을 좌우한다
스피커와 앰프에 수백만 원을 쓰고도 스피커에서 “지지직” 소리가 나면 대부분 배선 문제입니다. 조명 디머가 같은 회로에 물려 있으면 PWM 제어 신호가 전원선을 타고 앰프까지 들어옵니다. 냉장고 압축기가 돌 때마다 볼륨이 미세하게 출렁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기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원 환경의 문제인데, 이걸 모르고 앰프를 바꾸거나 케이블만 업그레이드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프리미엄 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면 음향 장비, 영상 장비, 조명을 각각 독립 회로로 분리하는 게 기본입니다. 한 회로에 몰아놓으면 기기 간 간섭이 생기고, 총 소비전력이 회로 용량을 넘기면 차단기가 떨어집니다.
회로 분리 기준
최소 세 개 회로를 따로 뺍니다.
음향 전용 회로
앰프, AV 리시버, 서브우퍼가 여기에 물립니다. 대출력 앰프의 순간 피크 소비전력은 정격의 2~3배까지 치솟을 수 있으므로 20A 전용 회로에 접지 포함 3선식으로 잡습니다. 콘센트는 장비 랙 바로 뒤 벽면에 배치해서 전원 케이블 길이를 최소화합니다. 케이블이 길어질수록 외부 노이즈를 안테나처럼 잡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멀티탭을 직렬로 연결하는 것은 접촉 저항과 노이즈 유입을 동시에 키우므로 피합니다.
영상 전용 회로
프로젝터, TV, 미디어 플레이어, 게임 콘솔 등이 대상입니다. 15A면 충분합니다. 프로젝터가 천장 마운트라면 천장 근처에 콘센트를 따로 설치해야 전원 케이블이 벽을 타고 지저분하게 내려오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HDMI 케이블 경로도 이 단계에서 함께 계획합니다. 전원선과 HDMI 케이블이 나란히 평행으로 달리면 간섭이 생길 수 있으므로, 교차할 때는 직각으로 교차시키고 가능하면 별도 배관을 씁니다.
조명 전용 회로
디머를 쓰는 조명은 반드시 음향과 별도 회로로 뺍니다. LED 디머가 만드는 고주파 잡음은 같은 회로의 모든 기기에 영향을 줍니다. 방음 설계에서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것만큼, 전원 경로에서 내부 잡음을 차단하는 것도 공간 완성도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디머 선택 시 위상 제어(leading edge) 방식보다 역위상 제어(trailing edge) 방식이 노이즈가 적습니다.
접지와 그라운드 루프
세 회로 모두 분전반에서 같은 접지 버스바에 연결해야 합니다. 접지 전위차가 생기면 그라운드 루프가 발생하고, 이게 스피커에서 “웅” 하는 60Hz 험(hum)의 원인입니다. 신축이라면 분전반에서 한 점 접지를 확보하고, 기존 건물이라 접지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면 오디오 장비 쪽에 절연 트랜스를 넣어 루프를 끊는 방법이 있습니다. 절연 트랜스 용량은 연결되는 기기의 총 소비전력보다 30퍼센트 이상 여유를 주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미국방화협회(NFPA)의 NFPA 70(NEC)은 주거 공간 전기 배선의 국제적 참고 표준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국내 전기설비기술기준과 함께 참고하면 안전과 성능 양쪽의 근거가 단단해집니다.
케이블 굵기 선택
전원 케이블 굵기는 전류량과 배선 길이로 결정됩니다. 20A 회로에 배선 길이가 15미터 이내라면 2.5mm² 케이블로 충분합니다. 30미터를 넘으면 4mm²로 올려야 전압 강하를 3퍼센트 이내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압이 떨어지면 앰프 출력이 줄고 왜곡이 늘어납니다. 전원 케이블 외에 스피커 케이블도 굵기를 신경 써야 합니다. 스피커 케이블은 배선 길이 5미터 이내면 1.5mm², 10미터 이상이면 2.5mm²가 기본입니다. 구리 순도가 높은 OFC(무산소동) 케이블을 쓰면 저항이 낮아져 신호 손실이 줄어듭니다.
시공 타이밍을 놓치면 비용이 뛴다
배선은 벽체 마감 전에 끝내야 합니다. 조명 레이어링을 계획할 때 조명 회로의 위치와 갯수가 확정되어야 배선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마감 후에 회로를 추가하려면 벽을 뜯어야 하므로, 음향과 영상 장비 목록을 배선 설계 전에 먼저 확정하는 게 올바른 순서입니다. 장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전용 회로와 빈 배관(CD 배관)만 미리 넣어 두면, 나중에 장비를 바꿔도 케이블만 교체하면 됩니다. 빈 배관 하나 넣는 비용은 몇만 원이지만, 마감 후에 배관을 추가하면 수십만 원이 들어갑니다.